오늘 쓰고자 하는 주제는 일상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흔히 겪게되는 질병입니다.
네, 바로 감기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성인의 경우 일년에 평균 2~3회 감기를 겪으며, 소아의 경우 일년에 6번 정도 감기를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수 많은 분들이 오늘도 감기약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을 방문하며, 처방없이 살수 있는 일반약을 찾는 환자분들 중에서도 감기약을 찾는 분들의 비중은 단연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 많은 감기를 겪어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겪게 될 것이 바로 감기입니다. 이렇게 일상 생활에서 감기와 감기약의 인식에 대한 중요도에 비해서, 우리나라 만큼 감기약에 대한 인식과 시장의 왜곡이 심한 나라는 없습니다.
(출처) http://www.kangkitae.com (처방)감기약에 대한 왜곡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입니다.
이에 늘 감기약을 조제하고 판매하는 저로서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터에 이번 기회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감기와 감기약에 대한 상식"을 알려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감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상식 첫번째 : 감기는 어느 부위가 아픈걸까?
감기가 우리 몸의 어디가 아픈 질병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지요? 사람들 대부분이 일년에도 여러번 겪는 질병이면서도, 사실 감기라는 질병이 몸의 어디에 걸리는 질환인지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막연하게 몸의 균형이 깨져서, 콧물과 기침이 나고 머리가 아프며 열이 나고 무기력해지는 '추상적인' 질병으로 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몸에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도'가 있는데 폐쪽에 가까운 '하기도'가 있고, 입과 가까운 '상기도'가 있습니다. 감기는 의학적으로 보자면 '상기도 감염증'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인두'부위에 급성 염증이 생기는 "급성 비인두염(acute nasopharyngitis)"을 바로 감기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겪으셨던, 혹은 지금 걸리신 감기 초기 증세를 자세히 돌이켜 보면 감기 초기에 목이 칼칼해지는 것을 분명히(!) 느끼셨을겁니다. '목이 칼칼해지는 증상'... 네 맞습니다. 바로 비인두에 염증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비인두에서 염증이 시작되면, 염증 매개물질(프로스타글란딘)이 뇌의 시상하부에 전달되어, 비로소 '전신증상'(몸에 열이 나고 기운이 없으며 두통이 생기는)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인두 부위에 급성 염증이 오는 것이 바로 '감기'의 정체입니다. 의학적으로 감기는 '급성 비인두염'이라고 부릅니다.
감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상식 두번째 : 감기의 원인 병원체는 무엇?
감기를 일으키는 주된 병원체에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 침입하여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는 바이러스, 세균, 진균(곰팡이)이 있습니다. 이 셋의 차이에 대해서 여기에서 말하다보면, 감기에 대해 얘기하기도 전에 이미 질려버리겠죠 ㅠ.
감기를 일으키는 주된 병원체는 바이러스들입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현재 까지 알려진 것만 200여가지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감기 원인 바이러스에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 약 30~80% 빈도수),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약 10~15% 빈도수) 등이 있습니다.
세균은 대사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생물체'이지만, 바이러스는 대사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로지 '숙주'가 존재해야만 스스로도 존재할 수 있는 생물체와 무생물의 중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친숙한 바이러스에는 가령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도 있고, 사마귀 원인 바이러스인 HPV(휴먼 파필로마 바이러스)도 있으며, 구순포진(입술물집)의 주 원인인 헤르페스 바이러스(HSV-1)도 있습니다.
감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상식 세번째 : 감기의 치료약은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감기치료제는 없습니다. 이 부분이 사람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감기의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 존재한다면, 그 약을 복용함으로써 감기로 앓는 기간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는 감기로 앓는 기간을 줄여주는 약은 발견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원인 바이러스를 치료하면 감기가 낫겠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에게 감기를 걸리게 하는 바이러스는 수백 종에 이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항 바이러스제들도 임상적으로는 감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항생제는 어떨까요?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는 약이고, 바이러스는 전혀 죽이지 못합니다. 따라서 바이러스 감염이 주요 원인인 감기에는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감기가 걸려서 병원(내과, 이비인후과)에 가면 항생제를 처방해줍니다. 즉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감기에, 바이러스는 죽이지도 못하는 항생제를 처방한다 이 말입니다. 이건 정말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죠.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2년도에는 급성상기도 감염(감기)에 대해 항생제 처방률이 74%나 되었고, 이것이 2010년의 경우 53%까지 줄었다고 합니다만, 아직도 매우 심각한 수준의 항생제의 오남용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균을 죽이는 약인 항생제는, 바이러스가 주 원인인 감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매우 흔한 게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항생제가 감기에는 원리적으로 듣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은 그렇다면 왜 자꾸만 항생제를 처방하는 걸까요? 항생제가 뭔가 해줄 수 있을거라는 의사들의 막연한 희망, 혹시나 세균감염에 의한 감기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그리고 감기에 이어 2차적으로 세균감염에 의한 합병증을 막아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 등등 때문에, 의사들은 지금도 항생제를 감기에 오남용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치루는 댓가는 매우 값비쌉니다.
감기치료제는 없다? 그럼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뭐란 말인가?
우리가 감기 걸렸을 때 흔히 먹는 약들은 모두 '증상 완화제'들 입니다. 즉, 감기에 걸린 기간 동안 덜 아프고 편안하게 병치레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이란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흔히 말하는 감기약들은 감기를 낫게 하는 약이 아니죠. 즉 병원처방 또는 일반 감기약을 먹는다고 해서 감기가 빨리 낫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감기로 인해 아픈 증상들을 '가리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보통 병원에서 처방 받아서 복용하는 감기약 알약들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항생제
(2)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해열, 진통, 소염작용)
(3) 기침약(진해작용)
(4) 가래약(담 용해 작용, 객담 배출작용)
(5) 콧물약(콧물을 멎게 하는 항 히스타민제)
(6) 위장 보호제 또는 소화제
이와 같이 4~5알, 또는 6알 정도의 알약이 감기약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우선 첫번째로 나열한 항생제는 앞에서 감기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항생제 내성 등의 오남용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의 성분임을 말씀드렸구요. 기침약, 가래약, 콧물약 등은 그 기능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약은 바로 두번째 성분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입니다. 감기의 염증부위인 비인두의 염증을 가라앉힘으로써 진통시키고, 해열시키므로 우리가 감기를 앓는 동안 겪게 되는 괴로움을 확 덜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참고글 : 2012/06/20 - [생활속의 약] - 일상에서 늘 접하는 인류 최고의 명약 ;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 - 아스피린, 부루펜 등
대표적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ibuprofen).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용 '부루펜 시럽'으로 잘 알려진 성분이며, 유효 성분을 추출한 덱스-이부프로펜 성분으로는 '솔루펜', '이지엔-6', '제로정' 등이 있습니다.
어차피 감기를 치료해주는 진짜 말그대로의 '감기약'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감기를 앓는 동안 '고통을 덜어주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야말로, 감기약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 가장 핵심적인 성분이다라고 하겠습니다.
결론 : 일반 소비자분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우리나라 감기약(특히 항생제)의 소비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이제 잘 아셨을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주 원인인 감기에, 세균에만 유효한 약인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결국 감기에는 아무런 혹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항생제를 빈번히 처방하고 복용하게 된 결과,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치솟아서, 우리나라의 황생 포도상 구균에 대한 페니실린계 항생제의 내성률은 약 70%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항생제 사용량으로 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항생제 소비량이 OECD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죠.
여러분들이 감기로 병원을 찾아갔을 때, 먼저 의사에게 (감기에는 유효하지도 않은)항생제를 처방하지 말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벌써 일부 건강에 대해 깨어 있는 환자분들은, 항생제가 감기약에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시기도 합니다.
감기를 빨리 낫게 하는 감기약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기를 앓는 동안, 덜 아프게 감기를 겪게 해주는 증상완화 약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를 반드시 명심하고, 감기에 올바른 대처를 하고,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줄 아는 현명한 소비자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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