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쪼개어진다고? 여러개의 자아가 나 안에 존재한다고? 이 글은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과 나, 평범한 사람들의 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핫한(베스트셀러) 교양과학책들을 읽어보면 '분리된 의식'이 현대 과학/과학철학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 이를 비중 있게 다룬 인상 깊었던 책은 '호모사피엔스 -유발하라리'와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What we cannnot know) - 마커스 드 사토이' 등이 있다.

 

우리의 영혼은 순수하게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목소리라고 하는 전통적인 관념 -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 은 현대의 뇌과학/뇌의학 사례들에 의해서 산산이 박살 나고야 만다. 내가, 지금 언어로서 생각을 하고 표현하고 있는 목소리인 의식의 흐름이 사실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단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의 고전적 세계관을  산산히 부숴버린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만큼이나 굉장히 충격적이다. 

 

우리의 두뇌는 거대한 전기적인 신호전달의 통합체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충격적인 결과는 20세기 들어와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끊긴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호모데우스'에 나와있는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198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로저 울코트 스페리 교수와 그 제자들의 연구결과인데 그중 10대 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이 소년은 역시 좌뇌와 우뇌 연결이 끊긴 소년인데, 소년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고 소년은 데생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답은 논리적 추론과 말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좌뇌가 제시한 대답이다. 연구자들은 소년의 우뇌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우뇌에게만 묻기 위해서 왼쪽시야에만 보이게 질문지를 놓았고, 좌뇌와 연결된 오른쪽 시야는 가린 상태였다. 좌뇌는 음성언어로 대답을 할 수 없기에 왼손을 이용해 철자 조각들을 이용해서 답할 수 있었고, 소년은 이들을 이용해서 이렇게 답했다. '자동차 경주'

또 다른 연구결과는 2차대전에 참전한 퇴역군인의 예인데, 두뇌 반구의 연결이 끊겨 있어서 좌반신과 우반신을 각각 우뇌/좌뇌가 따로 지배를 했다. 그의 경우 오른손이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왼손이 끼어들어 문을 닫으려고 하기도 했다.(p401~402)

 

같은 주제대 대한 것을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What we cannot know) - 마커스 드 사토이'라는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예에서는 뇌량이 절단된 환자에게 스크린에 나있는 구멍으로 손을 넣어 물건들을 만져서 그 개수를 파악하고 소리 내어 개수를 말하도록 하였다. 음성으로 말할 수 있는 좌뇌와 연결되어 있는 오른손을 환자가 넣었을 때에는 개수를 파악하고 음성으로 정확한 답을 말한 반면 왼손을 집어넣으면 답이 완전히 무작위로 오락가락했는데, 그 이유는 우뇌의 지배를 받는 왼손으로 물건을 만진 경우, 말하는 능력을 담당한 좌뇌로 정보가 전달이 되지 않아서 좌뇌는 아무렇게나 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환자에게 물건의 개수를 말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왼손으로도 정확하게 개수를 말하였다! (p. 430-431)

 

좌뇌와 우뇌는 뇌량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두 개의 분리된 의식을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의 자아'라는 허상을 구축한다.

위의 사례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유추해볼 수가 있다.

 

1) 왼손,오른손으로 번갈아가며 물건의 개수를 파악한 실험에서는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에 '뇌량'이라는 물리적 연결이 끊기고 나면, 두 개의 서로다른 인식의 주체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반구-오른손 커플이 물건 개수를 파악한 경우 음성으로 피실험자(좌뇌)는 물건 개수를 정답을 말할 수 있었지만, 반전은 이어지는 다음 실험에서 나온다. 우반구-왼손 커플이 물건 개수를 파악한 경우, 피실험자(좌뇌)는 물건 개수를 말할 수 없었고 또 다른 피실험자(우뇌)는 물건 개수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왼손 손가락을 이용해 정확한 개수를 표현하였다!

 

2)  좌뇌-우뇌 뇌량이 끊기면 서로간에 정보전달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좌/우 반구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의 뇌량이 끊긴 소년의 예(로저 울코트 스페리 교수의 연구결과)를 통해 유추해볼 수가 있다. 윗 단락에서 보았듯 소년의 좌뇌는 데생 화가가, 우뇌는 자동차 경주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또 뇌량이 끊긴 퇴역군인은 오른손은 문을 열려고 하는 중에, 왼손은 이것을 방해했다. 오른손과 연결된 좌뇌는 문을 열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왼손과 연결된 우뇌는 문을 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뇌량이 끊기지 않은 우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통일된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두개의 다른 의식이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지만, 좌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매개로  이 두 개의 분리된 의식이 어떤 기제 X에 의해 통합이 되어, '하나의 자아', '하나의 의식'이라는 허상(?), 또는 연속체를 구축한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뇌 과학이 앞으로 밝혀야 할 사실들은 앞으로 무한히 많다는 것을 바로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뇌 과학의 발전정도는 이제 첫걸음을 뗀 아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직 없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라는 것이다. '뇌'라고 하는 말랑말랑한 1.2kg의 덩어리는 물리적인 실체이다. 하지만 이 작은 회색 덩어리에서 어떻게 '의식'이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일까? 뇌 과학은 아직 그 본질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지만(뇌의 전기적 흐름을 측정하는 것 같은 물리화학적 현상을 관찰하는 것 외에는), 위의 '분리된 의식'과 같은 실험은 의식의 본질의 아주 일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아주 훌륭한 실험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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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at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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