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란 

평소 자신이 품고 있는 도덕적 가치관이나 생각이 있을 때,

이에  배치되는(어긋나는) 판단과 행동을 하였을 경우,  또는 이와 배치되는 사회현상 등을 발견했을 경우 등에 발생하는 불일치&부조화로 인한 심리적 불편함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아쉬 쉬운 예로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라는 '평소'생각을 가고 있던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될 경우 평소의 자신 생각과 배치되는 행동을 하게되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위의 그림 참조)

물론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서 전혀 마음불편해 하지 않는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이쯤 되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단어가, 

살아가면서 굉장히 흔히 겪게되는 심적갈등을 묘사하는 개념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결국에는 서로 불일치되는 두가지(자신의 신념 - 신념과 배치되는현상)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므로, 두가지중 하나를 수정하거나 없앰으로써

심리적인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가 있다.


첫번째로  '자신의 신념 - 신념과 배치되는 현상'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 

전자인 자신의 신념을 고쳐서 갈등을 해소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스스로 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이미 저질러 놓은 자신의 행동을 어찌할 수 없으므로, 

인지부조화에 따른 심적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을 손보는 수 밖에 없다.

즉, 일종의 자기합리화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술은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회사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자주 먹는 사람으로 바뀌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술은 안좋다'라는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는 행동을 하였으므로 인지부조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술을 먹은 사실은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팩트가 되어버렸으므로 

인지부조화로 인한 심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결국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가령 '하루에 한잔 정도의 술은 건강에 나쁘지 않다'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즉 이미 행동은 엎질러진 물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자신의 기존 생각을 바꿈으로써

인지부조화라는 심적 갈등을 조정하는 경우가 되는 것인데, 

이를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기 합리화'라는 개념이다.


알베르트 카뮈(Albert Camus)는 

"인간은 자신의 삶이 부조리하지 않다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생을 보내는 동물이다"

라는 말을 했다. 과연 카뮈는 이런 인지부조화라는 인간의 속성을 잘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자신의 신념 - 신념과 배치되는 현상'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

후자인 '신념과 배치되는 현상'을 손보아 갈등을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배치되는 사회적 현상 또는 증거를 접하게 되어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된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다.

이런경우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을 고치기보다는 , 이에 반하는 현상 

또는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부조화를 없애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것 역시 사회, 정치분야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로 

자신이 지지하는 K라는 정치인이 부정부패와 연루되었을 경우

'K라는 정치인은 깨끗하다'라는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가 부정부패에 연루된 증거를 믿지 않거나, 아예 그것과 관련된 팩트를 

무시해버리려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증거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의 경향을 표현하는 다른 개념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또하나의 유명한 개념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다른 표현으로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신념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그 신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증거만 

받아들이고(자기가 좋아하는 체리만 피킹하고), 

그 신념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불리한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는

통상적으로 흔히 범하는 인간의 오류를 콕 찝어서 잘 표현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의 사고오류는 대개 오류임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온갖 부정부패로 찌들은 모 정치인을, 그 부패의 증거를 끝까지 무시하면서까지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OOO와 같은 단체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https://larspsyll.wordpress.com/2016/07/21/cherry-picking-economic-models/ 수많은 증거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체리'라는 증거만 피킹하는 것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늘 '인지부조화'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또한 동시에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아주 쉽게 '확증편향'의 오류로 해소해버린다.

사실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은 우리의 내적인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인지부조화'가 왔을 때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르며,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의 자세는 무엇일까?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접하게 된다면 

이를 '확증편향'의 태도로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용기있게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여, 

이를 계기로 자신의 가치관을 한걸음 한걸음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발전시킬 때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 

더욱더 알차고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다.




Posted by Plat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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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원서로 복소수함수론을 배울때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이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개념인 '무리수'가 영어로 irrational number 였다는 것이다.





'irrational'은 '불합리한', '비이성적인'이라는 뜻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주요뜻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irrational number가 '불합리한 숫자'라고 언뜻 읽혔기 때문이다.


자세히 뜯어본 결과,  ratio(비율, 비)에 부정을 뜻하는 ir- 어미가 붙여서 

ir-rational 즉 (두 정수의)비율로 나타낼 수 없는 숫자라는 본래의 의미도 추측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정수의 비율로 나타낼 수 없는"과  "불합리한"이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다른 수 많은 영단어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두가지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끝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irrational" 단어의 원래의미는 '무리수'(irrational number)로부터 온 것이 맞았다.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만든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의 모임인 '피타고라스 학파'는 정수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만물의 근원도 모두 정수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과 관련해 아주 곤란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길이가 1인 이등변 직각 삼각형의 대각선의 길이가 2의 제곱근인데, 이것이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로 판명이 된 것이다. 즉 루트2가 무리수라는 것인데, 루트2가 무리수(irrational number)라는 것 역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를 모종의 위험적인 요소로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무리수의 존재가 그들 세계관의 불합리성과 오류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irrational'이라는 단어가 '불합리'라는 뜻을 갖게 된 연유가 되었다.(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발췌)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중요한 수학적 발견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수비율로 나눠지지 않는'이라는 뜻의 'irrational'이라는 단어에 '불합리'라는 뜻을 부여한 사람은 바로 피타고라스였던 것이다. 


무리수를 세계에 대한 위험적 요소로 받아들였다니, 현시대 사람들이 볼 때에는 웃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결국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졌으며 수학적 논증의 객관성 및 확실성에 매료되었던 피타고라스였지만 고대사람으로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Posted by Plat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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