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 불가의 '집착' 그리고 칸트의 자유론

군 시절 담배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던 기억.

 내가 군대에 있을 때의 일주일간 필드 훈련을 나가게 되었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모두들 보급품이 동이 나게 되었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담배였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소대원들은 거의 모두 흡연자들이었기 때문에 담배가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찰나, 필드 훈련에 늦게 동참한 한 간부(중사)가 앉아서 쉬고 있는 우리 소대원들 옆을 지나가다가 담배 한갑을 던지고 사라졌다.

흡연자라면 그 때의 광경은 상상이 가리라. 모두들 아프라카에서 굶주려 죽는 이들이 '구호물자'를 받았을 때처럼 담배 한대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비규환(?)이 되고야 말았다. 그 사건을 겪으며 나는 느낀 것이 많았다. 담배를 배우기 전이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담배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왜 이제는 담배가 없으면 불행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담배를 배운 이후 행복감이 더 증가하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보니 담배를 태우는게 기호행위가 아니었으며 나는 담배에 일종의 노예가 되어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에 여러번의 시도 끝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흡연자였을 때나 비흡연자인 시절이나 내 삶의 행복감은 같은데 차이점은 흡연자 시절은 담배가 떨어지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즉 흡연자로서의 나는 담배의 노예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순간부터 담배를 피는 행위는 나의 선택사항이나 기호가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일을 군대에서 겪으며 매우 드물게도 군대에서 담배를 배워나오는 대부분의 케이스와는 다르게 군대에서 담배를 끊고 나오게 되었다. ^^;;

담배를 끊은지 10년도 넘은 지금은 물론 담배에 대한 미련은 없다.(물론 아주 가끔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 라면먹고 난후, 커피마시고 난 후 등등)

 

 

요즈음 읽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칸트의 사상, 특히 그의 도덕철학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 때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담배를 끊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칸트의 자유론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의 자유에 대한 단상은 불가에서 말하는 '집착으로부터의 벗어남'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자유라면,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는 많지 않다!

"나는 하루 종일 자유롭게 선택이라는 행위를 하는데 무슨 말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칸트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선택 행위들의 대부분은 자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몇 개 없다.

"칸트의 논리는 이렇다.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식욕과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어떤 맛으로 주문할지 결정한다고 치자. 초콜릿? 바닐라? 아니면 에스프레소와 바삭한 과자를 얹은 아이스크림? 이는 언뜻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어떤 맛이 내 기호에 가장 잘 맞는지 파악하는 행위이며, 여기서 내 기호는 애초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바닐라보다 에스프레소와 과자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욕구일 뿐이다"

- "정의는 무엇인가" 에서 발췌

즉 애초에 그러한 욕구를 직접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욕구를 추구한다고 해서 어떻게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칸트에 의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느냐 초코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호'에 잘 맞는지 파악하는 행위이며

여기서 내 기호는 애초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선택,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칸트가 생각한 것은 이 경우는 우리의 '본능과 기호'에 '복종'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추구한다면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초원의 사자를 생각해보자. 사자는 드넓은 초원을 종횡무진 하는 적수가 없는 사자를 보면 자유롭게 사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자에게 아무런 자유도 없다. 그는 '허기짐을 채워야 한다'라는 '본능'과 '생존욕'에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종속되어 살아간다.

 

아이스크림의 선택과 같이 원초부터 존재한 본능에 기반을 두어 선택하는 행위는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행동하는 '종속적인' 행위이다.

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칸트의 자유론에 비추어서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행동들은 사실 본능과 쾌락에 의해 '지배를' 받는 행위들임을 알 수 있다. 술이 좋아서 술을 먹는 '자유'를 행사한다고 하는 많은 남성들은 사실 술이 없으면 불행해진다. 담배를 '태울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담배가 없으면 매우 불행해진다. 이러한 자유는 '본능에의 굴종'이지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다. 오늘 하루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생계유지를 위해서' 살아간다. 이러한 하루의 삶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돈의 노예', '욕망의 노예'가 되어있음을 모르고 살아간다.

실상 이렇게 느끼고 나서도 '돈과 욕망의 노예'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돈과 쾌락이 없으면 불행함을 느끼는 '돈과 쾌락에 종속적인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범인들은 돈과 쾌락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가는 '초인'들이 부러울 뿐이다. 결국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궁극적인 자유의 존재가 바로 '신'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지 않을까?

 

칸트의 자유론과 불교사상에서의 '자유'의 차이점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를 '자유로운 선택'에서 배제한다면 과연 어떠한 것이 자유로운 행위라고 보는 것일까? 칸트는 자율적인 행동을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어떠한 행위의 목적이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이라면 그 행위는 '자율'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칸트가 말하는 자유로운 행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이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수록 종속적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자유론과 불교의 사상은 동일한 출발점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모든 본능적 욕구(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궁극의 자유로 보는 불교철학과는 달리 칸트의 자유론은 '자율적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Plat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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